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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존재하는 인과응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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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원사
댓글 0건 조회 243회 작성일 24-09-24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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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존재하는 인과응보의 법칙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수백 년이 지난 뒤, 인도에 '구마라다'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어느 선비가 스님을 찾아오더니 자기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못 믿겠다고 하더랍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를 믿고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질병으로 고생하셨지요. 하지만 이웃에 살던 백정은 늘 살생을 했지만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과응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구마라다 스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을 짓고 그에 대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에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오늘 받는 것이고, 오늘 지은 업에 대한 과보는 미래에 받는 것이지요.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따라오고, 길을 걸으면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처럼 업의 과보는 반드시 따라옵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이와 같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번 생에 나쁜 짓을 하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복은 언젠가 모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이번 생을 살면서 지은 악업에 의한 과보를 이번 생의 언젠가는, 혹은 미래 생에라도 반드시 받게 됩니다. 

  반대로 이번 생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복을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면서 지은 선업에 의한 복을 이번 생의 언젠가는, 혹은 미래 생이라도 반드시 받게 됩니다."


  불교가 가르치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이와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의 전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과거에 어떤 악업을 지어 지금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지, 또 과거에 어떤 선업을 지어서 지금 이런 복을 누리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맞습니다. 악업은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선업은 많이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생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악업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업 짓기는 게을리하면서 어리석게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윤회라는 것이 정말 있고, 그 윤회의 사슬 속에서 내가 지은 업에 대한 과보는 내가 반드시 받는다.' 라고 확고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악업 짓기를 두려워하며, 선업 짓기를 게을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ㅡ 기도 가피 이야기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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